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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 본 미황사

우리가 사는 곳이 그림이고 명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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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금강 작성일11-09-22 00:18 조회1,9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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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곳이 그림이고 명승이다

입력 : 2011.06.30 09:01

책 따라 떠나는 국내여행
마음 씻어주는 한 잔의 '묵호' 낭만을 걷는 '정동길'

사람은 나고 자란 곳으로 정성을 돌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작가들이 묘사하는 우리 고장들은 바로 그림이고, 노래다. 남다른 감수성과 우리 땅에 대한 넘치는 애정으로 쓴 글이라 풀잎 한 포기가 파르르 떨려도 마음이 뛰고, 파도가 한번 철썩 쳐도 가슴이 에인다. 책 한권만 들고 있으면 어딜 가도 명승이요, 낙원이다.

휴가 계획 때문에 고민이라면 책장의 책들을 한 번 훑어보자. 무심코 지나쳤던 책 속에서 작가들이 그려넣고 새겨놓은 우리 땅 곳곳의 절경이나 향락을 발견할 수 있다.
미황사 | 한승원 '항항포포'

섬나라인 일본에선 자기네 땅 구석구석을 '포포진진(浦浦津津)'이라고 부른다. 한승원의 로맨스 소설 속 주인공 임종산은 이를 '항항포포(港港浦浦)'라고 번역한다. 유부남인 그는 세상을 떠난 내연녀의 흔적을 추억하며 흑산도부터 부산, 제주도까지 바다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 물론 이 여정에서도 여자는 함께다. 주인공의 불륜 행각을 살짝 눈감아줄 수만 있다면, 바다 여행에 이보다 더 적합한 가이드북은 없다. 작가의 고향인 전남 바다 마을과 음식에 관한 묘사는 여느 기행문보다도 섬세하고 풍부하다.

달마산은 남쪽 바닷가의 작은 금강산이었다. 묘연은 차창 밖을 가리키며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아, 저 산! 산은 머리에 우삣쭈삣한 회흑색의 관들을 겹겹이 쓰고 있었다…그가 말했다. "아름다운 산중턱의 한복판에 자리잡은 절터가 생기왕성한 곳이라서 미황사라 이름을 지은 모양입니다."

해남 땅끝마을에 있는 달마산(해발 489m)은 공룡의 등줄기처럼 울퉁불퉁한 암봉으로 형성되어 있는 데다가 다도해 전망 때문에 등반 시 단조로움을 느낄 새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웅보전의 낭창하게 휘어진 용마루가 그림 같은 달마산을 등에 짊어지고 있었다. 정교한 기왓골과 기왓등이 국숫발처럼 흘러내렸다. 추녀 밑의 도리 끝과 보 끝에 뿌리를 묻고 날갯짓을 하는 세 겹의 익공들이 눈앞에 현훈을 일어나게 했다.

미황(美黃)은 풀이하면 아름다운 생명이 솟구쳐 오른다는 뜻이다. 그 아름다움은 웅장함이나 화려함이 아니라 초연함과 도도함에 있다. 속세의 잡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거친 생명력을 간직한 달마산 안에서 오롯이 자신의 빛을 은은히 내뿜겠다는 위엄마저 느껴진다.

춘천 | 최인호 '인연'

춘천은 젊은이들이 가는 도시로 느껴질 때가 많다. 대학생들이 MT 장소로, 연인들이 데이트 장소로 자주 찾는 곳이긴 하다. 최인호는 나이가 들어 친구의 손에 이끌려 다시 춘천에 갔다. 그도 이곳에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청춘'이다.

춘천. 아득히 먼 젊은 날,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는 여인들과 데이트하던 낭만도시.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을 따라 길을 돌아나가면 강촌이 나오고 섬이 나오고 폭포가 나오고 호수가 나오고 유난한 햇빛과 참혹한 젊은 날의 고독이 고인돌처럼 저며 있던, 지금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환상의 도시. 그래서 도시의 이름이 봄의 개울, '춘천(春川)'일까.(중략)

김유정의 생가 앞에서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아, 한 작가가 고향에서 대접을 받고 있구나. 지독한 말더듬이에 폐병쟁이. 살아서는 '노트르담의 꼽추'처럼 멸시받았으나 죽어서는 고향에서 저렇게 부활하고 있구나.


어떤 이에게 춘천은 호수나 닭갈비, 연애가 아닌 작가 김유정(1908~1937)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최인호는 춘천에 있는 김유정 생가에서 그가 죽기 열흘 전 평생지기였던 작가 안회남에게 쓴 유서와 같은 편지의 흔적을 찾았다. 20대 초반, 노트에 이 편지를 베껴 써놓고 읽을 때마다 펑펑 울었다고 한다.

사천(삼천포) |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삼천포'는 이제 '사천'이 됐다. 만년 꼴찌를 면치 못해 오히려 유명해진 야구단 '삼미 슈퍼스타즈'를 다룬 박민규의 소설을 읽어보면 삼천포란 지명이 사라진 게 이토록 아쉬울 수가 없다.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

삼천포만큼 박민규의 소설에 어울리는 곳이 있을까.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 때문에 중심부보다는 언제나 주변부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들의 인생처럼 어쩌면 계획한 대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삼천포에 빠지듯' 옆으로 새어나가듯 살아가는 게 진짜 인생일지도 모른다.

삼천포에서의 일주일은 언제나 생생하다. 남일대 해수욕장(국내 최소 규모)에서 우리는 캐치볼과 러닝을 하고, 밤이면 맥주를 마시며 삼미 슈퍼스타즈의 시합 비디오를 보거나, 웃고 떠들거나, 자거나 했다. 언제나 새 치약을 꾹 눌렀을 때와 같은 기분의 시간이 우리의 주변에 흘러넘쳤으므로, 우리의 시간은 그런 민트향이라든지, 박하향이라든지, 죽염 성분이 가미된 솔잎향으로 가득했다.

100m 달리기도 못할 정도로 작은 남일대 해수욕장을 달리면서 주인공들은 계속 넘어진다. 바다가 너무 아름다워서란다. 작고 북적이지 않아서 맑고 수수하기도 하다.

묵호 | 심상대 '묵호를 아는가'

고민이 있는 사람들은 서해도, 남해도 아닌 동해를 간다. 대학에 떨어지거나 실연을 하면 정해진 코스인양 동해에 가서 술을 마시고 눈물을 흘린다. 심상대는 그 이유를 안다.

바다, 한 잔의 소주와 같은 바다였다.(중략) 내게 있어서 동해 바다는(동해에 바다가 들어갔는데, 동해 바다라고 한 건 잘못된 표현 아닌가?)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술, 한 잔의 소주를 연상케 했다. 어느 때엔, 유리잔 벽에서 이랑 지어 흘러내리는 소주 특유의 근기를 느껴 메스껍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것은, 단숨에 들이키고 싶은 고혹적인 빛깔이었다. 파르스름한 바다. 그 바다가 있는 곳. 묵호.(중략) 바다가 그리워지거나, 흠씬 술에 젖고 싶어지거나, 엉엉 울고 싶어지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허둥지둥 이 술과 바람의 도시를 찾아나서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언제나 묵호는, 묵호가 아니라 바다는, 저고리 옷고름을 풀어헤쳐 둥글고 커다란 젖가슴을 꺼내주었다.

손가락으로 찔러보고도 싶고, 한 모금 떠마시고도 싶을 정도로 투명한 동해 묵호 앞바다. 코를 찌르는 소주 냄새 대신 청량한 짠 내가 난다. / 유창우 영상미디어 기자 canyou@chosun.com
남해가 막걸리의 구수함과 시큼함과 닮았다면, 동해는 소주의 쌉싸래한 맛에 훨씬 더 가깝다. 동해 중에서도 유난히 투명해 보이는 묵호라면 '소주와 같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여수 | 김명인 '여수', 한강 '여수의 사랑'

'2012 세계박람회'를 앞둔 여수는 요즘 한창 흥겹다. 그러나 작가들이 보는 여수는 '생기발랄'보다는 '멜랑콜리(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에 가깝다.

여수, 이 말이 떨려올 때 생애 전체가/한 울림 속으로 이은 줄 잊은 때가 있나/만곡진 연안들이 마음의 구봉을 세워/그 능선에 엎어놓은 집들과 부두의 가건물 사이/바다가 밀물어와 눈부시던 물의 아름다움이여(중략)/麗水(여수)가/旅愁(여수)여도 좋았던/(후략)

김명인의 시 '여수'다. 여수는 '아름다운 물'이다. 그런데 '수'자를 '근심 수(愁)'로 알고 있는 이들도 있을 정도로 여수는 정체 모를 우수나 애수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작가들이 여수의 아름다움에 동의하는 이유가 뭘까. 대책 없이 해맑은 여자보다 우수에 찬 여자가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여수, 그 앞바다의 녹슨 철선들은 지금도 상처 입은 목소리로 울부짖어대고 있을 것이다. 여수만(灣)의 서늘한 해류는 멍든 속살 같은 푸릇푸릇한 섬들과 몸 섞으며 굽이돌고 있을 것이다. 저무는 선착장마다 주황빛 알전구들이 밝혀질 것이다. 부두 가건물 사이로 검붉은 노을이 불타오를 것이다.

여수는 밤에 봐야 제맛이다. 그것도 겨울에. 한강이 '여수의 사랑'에서도 썼듯이 바다의 녹슨 배들이 물결에 흔들리며 적막을 깬다. 눈이 시릴 정도로 밝은 색색의 알전구도 귀엽다기보단 좀 처연하다. 바다 바람까지 맞으면 가슴은 시큰해지는데 머리는 개운하다.

완도 구계등 | 윤대명 '천지간'

완도 구계등(九階燈)은 길이가 약 800m 정도의 해변으로 해변을 덮고 있는 작고 푸른 조약돌 '청환석(靑丸石)'으로 유명하다. 현지에서는 이 돌을 윤돌이라 부르기도 한다. 구계등이라는 이름은 바닷속에서부터 이 조약돌들이 아홉 개의 고랑을 이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해변의 경사가 완만해서 모래 한점 없는데도 여름이면 이곳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눈이 그치고 난 뒤의 해변은 파도 소리마저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안으로 활처럼 휘어져 있는 해안으로 내려갔다. 수박만한 청환석들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참외만하게, 주먹만하게 작아지더니 물밀녘에 이르자 겨우 달걀만해졌다. 무릎 아래로 달빛에 부서진 파도가 은빛 거품을 물고 달려들고 있었다. 언뜻 뒷전에서 바람이 이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방풍림이 달빛 아래 떨고 있는 게 보였다.(중략) 700m의 푸른 돌밭은 왕의 요대(腰帶)처럼 번쩍거리고 있었다. 나는 슬그머니 발을 뻗어 요대 위를 걸어가 보았다.

이곳 사람들에 따르면 돌들이 천 년 동안 바닷물에 씻겨 마침내 푸른색을 띠게 되었다고 한다. 빛을 내며 일렁이는 푸른돌을 보자면 욕심이 생길 만도 한데 생각없이 들고 나갔다간 봉변을 당하게 된다고 한다. 대신 보는 재미 말고 듣는 재미도 있다. 파도가 밀려왔다 빠질 때마다 갯돌들이 서로 몸을 문지르면서 '자그르락 자그르락' 소리를 낸다. 파도가 닿는 곳에는 주로 굵은 갯돌만 깔려 있다보니 파도가 거센 날에는 돌 구르는 소리가 더 요란하다.

서울 정동길 | 방인근 '마도의 향불', 박태원 '애욕'

덕수궁 정문부터 경향신문사까지 이어지는 정동길은 도심 한가운데의 보석과 같은 곳이다.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고, 운치도 있으니 누구에게도 뺏기고 싶지 않다.

애인 없어도 된다. 혼자 걸어도 좋은 서울 정동길. / 조선일보 DB
영철은 서대문 턱에서 탓든 전차를 차내 버리고 정동 골목을 들어섰다. 이 골목에 들어서면 벌써 서양촌이란 노랑 냄새가 풍기고 학교촌이란 푸른 기운이 도는 것 가텄다. 그러면서도 한가롭고 깨끗한 늣김을 주었다. 이 골목은 장차 오는 조선의 주인공인 남녀학생이 아츰 저녁으로 수천만번 그 힘찬 발자욱으로 다지고 다진 골목이다.

1920년대 방인근이 묘사한 정동길의 풍경이나 지금의 그것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노랑 냄새와 푸른 기운이 좀 가시긴 했지만, 한가롭고 깨끗한 느낌은 여전하다.

"난 이 길이 좋아. 여기 하구, 원남동 신작로 하구." 갑자기 여자는 꿈꾸는 듯이 또 자못 감격을 금할 수 없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러한 거리는, 딴은, 남녀가, 특히 밤늦게 산책하기에 좋은 곳들임에 틀림없었다.(중략) 마침 지나는 이화여고보 정문에 달린 외등을 쳐다본 여자는, 혹은, 남자나 마찬가지로 그 밝음을 저주하였는지도 모른다.

박태원이 조선일보에 '애욕'을 연재한 1930년대나 지금이나 정동길은 연인들의 길임에는 틀림이 없다. 물론 더이상 이 길의 외등 따윌 저주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덕수궁 돌담 옆에서 조명을 받으며 손을 잡거나 입을 맞추는 이들이 어디 한둘인가.

그밖에…

작가들의 작품을 따라 국내 여행을 다니자면 끝이 없다. 경남 하동군이 주무대인 박경리의 '토지'와 전북 남원시가 배경인 최명희의 '혼불'은 이 지방을 찾아가기 전 꼭 읽어야 할 고전(古典)으로 꼽힌다. 그리고 낭만과 체력으로 무장한 젊은이라면 김연수의 '7번국도'를 따라 동해안을 돌아보길 추천한다. 서울의 가장 고즈넉한 곳으로 꼽히는 안국동에서 재동, 계동, 가회동 일대에서 데이트하고 싶은 남녀는 김연수의 단편인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을 필히 참고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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