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3-26 09:14
금강스님의 선담 / 답답함 속에서 한 걸음 더
 글쓴이 : 에포케
조회 : 139  

답답함 속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라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뒤로 물러나지도 못하는 상황을 일반적으로 사면초가라고 한다. 이러한 때에 선사들은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라.”, “은산철벽을 뚫으라.”라고 말한다. 오히려 답답할 때를 공부의 기회로 삼고, 비약하는 계기로 여기라는 말이다.
 
         사면초가는 『사기史記』 「항우본기」에 있는 내용이다. 한신의 30만 대군이 사방으로 둘러싸고 초나라 노래를 부르는 심리전에 초패왕 항우가 대패하여 자살을 하였다는 유래에서 나온 말이다. 감상적이고 애잔하고 구슬프기 짝이 없는 초나라 노래에 부모처자를 두고 고향을 떠나 오랫동안 전쟁에 시달려온 초나라 군사들의 심정은 그야말로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무장해제까지 되었을 것이다.
 
이 고립무원의 사면초가를 만나는 경우는 누구에게나 있다. 생명 있는 것들은 생로병사로 인해 고통의 벽을 만난다. 특히 사람들은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삼독심으로 더 많은 벽을 만난다. 숲에 홀로 서 있는 나무도 겨울을 만나고 태풍을 만나고 가뭄을 만나는데 더 많은 관계로 엮인 사람의 삶은 당연하다. 많은 일과 빠른 속도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더욱 그러하다.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한 사람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갈 수도 없는 때가 종종 있다. 산속에서 홀로 수행에만 전념하는 스님들도 마음의 벽뿐만 아니라 실재하는 벽을 만나기도 한다. 혼자만의 삶이 아니라 많은 이들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6년 전쯤에 도반스님을 이승에서 떠나보내게 되어, 25년 만에 도반들이 한자리에 모였던 적이 있다.
 
그동안 각자 공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태백산 도솔암에서 소식을 끊고 15년 동안이나 살았던 원덕 스님이 말문을 열었다. 산속 절에서도 두 시간이나 더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 토굴은 인적이 끊긴 곳이었다. 그저 산과 나무와 새들과 산짐승들과 살 뿐이었다. 오묘하게도 양식이 떨어질 때쯤이면 누군가 쌀을 지고 올라와 수행에 장애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샘에 물이 마르고, 양식도 떨어졌는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더란다. 산에서 내려가지 않기로 마음의 약속한 터라 한 달을 움직이지 않았다. 몸은 야위어 뱃가죽과 등짝이 맞닿아 흡사 부처님의 고행상처럼 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의식은 명료하고 화두는 명명백백해지더란다. 오히려 어려움이 공부의 큰 진전을 하게 하였던 것이다.
 
         사형되는 스님 한 분이 주지 소임을 놓고 내가 사는 절에서 한 철을 같이 살게 되었다. “마음공부는 주지 소임을 마치고 공부할 때가 진짜인 것 같다.”는 말을 자주하곤 했다. 그 말은 나에게 그만 주지하고 같이 제방 선원에 구름처럼 함께 다니자는 제안의 말이었다.
 
이 스님은 출가한 지 얼마 안 된 초발심 때 지리산 칠불사에서 삼년결사도 하고 꾸준하게 선원에서 참선 정진하다가 주지 소임을 맡게 되었다. 도심 속에 수행과 포교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의욕적으로 땅을 구입하고, 극락전을 짓고, 납골당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일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말았던 모양이다. 소문만 듣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고, 지지해주고 도와주어야 할 가까운 이들마저 비난하는 속에서 그야말로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더란다.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커져만 가는 문제를 마주하자니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부딪힌 셈이다. 문득 화두를 들었다. 화두를 들고 있는 시간에는 고요하고 화두를 놓치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간절하게 화두를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십여 일 화두에 매진하니 보이지 않던 실마리가 보이고 풀리기 시작하더란다. 지혜가 나타나고 모든 문제들이 원만하게 풀리니 자유로운 마음이 되어 다시 걸망을 지고 다니게 되었고, 비로소 공부의 깊은 길을 알 것 같더란다. 
 
         부안의 내소사는 숨은 도인 해안 스님(1901~1974)의 법문이 살아 있는 곳이다. 아직도 스님의 제자들은 한결같이 “은산철벽을 뚫어라.”는 화두를 든다.
 
나도 아주 오래전에 음성 파일로 스님의 법문을 감동적으로 듣게 되었는데 갓 출가한 학인시절에 겪은 깨달음의 법문이었다. 
 
해안 스님이 백양사 강원에서 학인시절을 보내던 때 성도재일 날 대중 전체가 운문암에 모여 일주일 동안 용맹정진을 하게 되었다. 조실인 백학명(1867~1929) 스님으로부터 “은산철벽을 뚫어라.”라는 화두를 받고서 정진한 이야기를 실감 나게 해주셨다. 일주일 동안 매일 아침 공양 후에는 조실스님 방에 불려가 공부 점검을 받았다. 공부에 진척이 없으니 방에 들어갈 때마다 소가 도살장 끌려가는 심정으로, 들어갔다가 절망만 가득 안고 나오는 답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때였다. 방 안에 들어와 있는 지네 한 마리를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그 지네가 방문을 나가려고 애쓰다 어느 순간 보이지 않음을 보고 모기가 무쇠로 만든 소를 뚫듯이 은산철벽을 뚫었다고 한다. 스님의 이 법문은 공부하는 수행자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해안 스님은 평생 동안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일주일이면 깨달음을 얻는다고 말씀하시고 매일 후학들을 점검하셨다.
 
         해안 스님의 ‘멋진 사람’이라는 시는 참 멋진 시다.
 
고요한 달밤에 거문고를 안고 오는 벗이나 단소를 손에 쥐고 오는 친구가 있다면 구태여 줄을 골라 곡조를 아니 들어도 좋다. / 
맑은 새벽에 고요히 앉아 향을 사르고 산창으로 스며드는 솔바람을 듣는 사람이라면 구태여 불경을 아니 외워도 좋다. /  
봄 다 가는 날 떨어지는 꽃을 조문하고 귀촉도 울음을 귀에 담는 사람이라면 구태여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니라도 좋다. /  
아침 일찍 세수한 물로 화분을 적시며 난초 잎에 손질을 할 줄 아는 이는 화가가 아니라도 좋다. /  
구름을 찾아가다가 바랑을 베개하고 바위에서 한가하게 잠든 스님을 보거든 아예 도라는 속된 말을 묻지 않아도 좋다. / 
야점사양에 길을 가다 술 사는 사람을 만나거든 어디로 가는 나그네인가 다정히 인사하고 아예 가고 오는 세상 시름일랑 묻지 않아도 좋다.
 
         귀한 사람의 몸을 받아 이 땅에 온 우리, 한바탕 멋지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살고자 한다면 작은 바람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태풍에 뿌리를 뽑혀서도 안 된다. 오히려 힘겨운 고개를 만나면 저 너머 너른 들판이 있음을 알고 기쁘게 만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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