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5-03-12 23:36
땅끝마을 미황사의 설날풍경
 글쓴이 : 금강스님
조회 : 5,134  

‘설날 차례지내는 것은 어찌하고 모두 절로 다 모이는 거요’
‘아따 스님은 새로 와서 잘 모르는 구만요’
‘여그는 설 차례는 그믐날 지내고, 설날은 부처님께 불공 올리고 절에서 떡국을 먹지라잉’

떡작(대나무로 엮어 만든 상자)에 쌀과 과일을 담아들고 섣달 그믐날 이 십여리 추운밤길을 걸어서 줄지어 찾아오는 선남선녀들이 있다.

부처님께 새해 인사를 드리기 위해 지난 가을부터 쌀을 따로 준비해 놓고,
가까운 장날에는 과일과 초를 구입해놓고,
부부는 방을 따로 쓰고,
찬물에 목욕하고,
옆집에 아이를 낳았어도 가지 않고,
절에 오는 길에 말도 삼가고,
무거운 짐이어도 땅에 내려놓는 일 없이 부처님전까지 찾아온 사람들이다.

설날 새벽 대웅전에 다들 모였다.
부처님 앞에는 공양그릇에 담겨진 쌀과 과일들이 가득하다.
마루에는 절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하다.

새벽예불과 기도를 마치고는 ‘우리 함께 새해 세배합시다’.

‘새해에는 여러분들과 가정과 이 고장과 나라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밝고, 아름답고, 좋은 일들만 가득하기를 발원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절에 도착하자마자 불공을 해 마친 것입니다.
제가 따로이 축원을 하는 것은 그저 위안일 뿐입니다.
부처님께 찾아오는 여러분들의 마음은 세상에서 더 없이 맑고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입니다.
여러분들의 그 아름다운 마음이 한 해 동안 자신과 가족과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저녁무렵이 되면 나물과 과일과 초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나는 마을로 내려간다. 마을의 당재를 지내기 위해서이다.

설날 몇 일전에는 마을의 원로와 이장이 쌀가마니를 들고 찾아와 부탁을 한다.
스님 덕분에 올 한 해도 아무 탈 없이 잘 지냈으니 이번에도 당재를 지내주라는 전갈이다. 오래전부터 아랫마을들의 당재를 미황사 스님들이 지내주는 풍습이 있어왔다.

마을 당산나무나 청정한 곳에 절에서 준비한 음식들을 차려 놓고 천수경과 신중청을 하는 동안 마을이장이나 대표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절을 올리고 소지종이를 태운다.
염불이 끝나면 농악패들이 마을의 이 곳 저곳을 돌며 지신밟기를 한다.

마을사람들은 설을 부처님 앞에서 맞이하고,
미황사스님들은 마을로 내려가 마을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한다.

이렇게 설날을 맞이 한지도 벌써 십 오년이나 흘렀다.

해인사 강원시절 맞이했던 설날은 ‘통알’이라 하여 산내의 전대중이 대웅전에 모여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방장스님과 원로스님들, 비구, 비구니, 사미, 사미니, 행자와 재가대중이 차례로 세배를 올린다.

아침공양을 마치고는 ‘세알’이라 하여 학인스님들은 또다시 차례로 어른스님들을 방문하여 세배를 하고 수행덕담 듣고는 하였다.

초삼일이 되면 사중의 모든 스님들은 신중기도라 하여 하루 여덟 시간 동안 대중방에 모여 칠일기도를 하고 천도재를 올렸다.

수행자들의 엄격함과 위계질서가 배어드는 시간이었다. 설날이라 하여 들뜨기 보다는 ‘설’이라는 말이 내포하는 조심하고 삼간다는 철저함과 수행의 칼날을 다시 세우는 날로 몸에 배어 있었다.

땅끝마을에서 맞이한 설날은 파격이었고,
민중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이고,
신성한 종교였다.

내가 땅끝마을을 떠나지 않고 있는 것도 이들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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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oche 18-04-14 16:52
답변 삭제  
...()...

올 해 설날을 미황사에서 맞이했지요.

생각같아서는 남은 설날 모두 미황사에서 맞이하고 싶어요.
아니 제 설날을 미황사에 올립니다.

진정한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되겠습니다.

예전에는
다른 나라의 공동체를 부러워했었는데
지금은
해남 땅끝에
아주 가까이 있으니 그 기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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