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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 본 미황사

[최종걸의 창건설화] 달마 스님이 입산했다는 달마산 미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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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9-12-24 09:08 조회1,4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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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걸의 창건설화] 달마(達磨) 스님이 입산했다는 달마산 미황사
  • 최종걸 주필
  • 승인 2019.11.19 13:08
  • 19면
  • 댓글 0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달마산(達磨山) 미황사(美黃寺) 전경. 사진 제공 미황사
인도, 중국, 한국, 일본 등에 선종(禪宗)의 시조로 알려진 달마 스님이 머무르고 있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 바로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달마산(達磨山) 미황사(美黃寺)다.

미황사 사적비에 따르면 749년 8월 한 척의 석선(石船)이 사자포 앞바다에 나타나 어부들이 가면 멀어져 오가고를 반복했다. 이를 본 의조 스님이 제자 100여명과 함께 해변으로 나갔더니 배가 육지에 닿았다고 한다. 스님이 배에 오르니 황금 복장을 한 금인(金人)이 노를 잡고 있고, 놓여 있는 금함(金函) 속에는 ‘화엄경’, ‘법화경’, ‘비로자나불·문수보살·보현보살·40 성중(聖衆)·53 선지식(善知識)·16나한의 탱화’ 등이 있었다.

그날 밤 의조 스님 꿈에 금인이 나타나 자신은 인도의 국왕이라며 “금강산이 일만 불(一萬佛)을 모실 만하다 하여 배에 싣고 갔더니, 이미 많은 사찰이 들어서서 봉안할 곳을 찾지 못하여 되돌아가던 길에 여기가 인연토(因緣土)인 줄 알고 멈추었다.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모시면 국운과 불교가 함께 흥왕하리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음날 소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가다가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 일어난 곳에 통교사(通敎寺)를 창건하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창건했다는 것이다. 미황사(美黃寺)라 한 것은 소의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웠다 하여 아름다울 미(美), 금인(金人)의 빛깔을 상징한 황(黃)을 뜻한다고 한다. 이 같은 창건 설화를 뒷받침할 만한 흔적이 미황사 아래 마을에 있다. 불경을 짊어지고 올라가다 쓰러졌던 소를 묻었다는 우분동(牛糞洞, 쇠잿동)이라는 마을이다.

또 ‘동국여지승람’에서도 미황사에 관련된 기록에 따르면 달마산에는 미황사와 도솔암 등 12개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1264년 겨울에 중국 남송의 배 한 척이 달마산 동쪽 바다에 도착 "이 나라에 달마산이 있다고 하던데 이 산이 그 산인가?"라고 배에 탄 중국 고관이 물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자, 그는 달마산을 향해 예를 표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그 명성만 듣고 동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이리 보니 여기서 나고 자란 그대들이 부럽고 부럽도다. 이 산은 참으로 달마대사가 항상 머무를 만하구려"하고 참배하고 화폭에 담아갔다는 것이다. 고려 후기에 미황사가 있는 달마산이 중국인에게도 잘 알려진 산이라는 해석이다.

다름 아닌 그 달마 스님은 남인도 향지국의 셋째 왕자로 태어나서 석가모니부처님으로부터 27대의 법을 이어받은 반야다라 존자의 제자였다. 중국 양나라때 무제의 초청을 받고 불법을 펼치러 갔지만, 무제와의 문답을 통해 아직은 법을 펼칠 때가 아니라 생각하고 숭산의 소림굴에서 9년간이나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면벽 참선 수행만 했다. 이때 찾아온 선종(禪宗)의 2대 조사인 혜가 대사를 만나 선법을 전해주고는 중국에서 사라졌다. 이후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이 달마대사를 선종의 초조로 모시고 선 수행을 이어오고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달마대사의 행적이나 지명이 있는 곳은 없었다.

그때 중국인들이 달마대사가 해동으로 건너가 안주한 곳이 이곳 달마산(達摩山)이라며 찾아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름답고 규모가 웅장했던 미황사도 창건 이후 정유재란 때 소실됐다가 복원과 중창을 거치는 동안 150여년 전에는 40여명의 스님이 중창 불사를 벌이려고 스님들이 군고(軍鼓)를 차려 해안 지방을 순회하며 탁발을 하러 나갔다가 전복사고로 절이 폐허가 되는 시련도 겪었다고 한다.

폐허나 다름없었던 미황사가 기나긴 면벽의 세월을 뒤로하고 지난 90년대부터 선 수행의 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다. 미황사 아랫마을 출신인 금강 스님이 출가 후 주지 소임을 맡아 선종의 초조 달마 스님이 머물고 있다는 설화를 풀어내려는 달마산 산 내 옛 암자를 잇는 불사를 회향시켰다. 달마고도(達摩古道)는 달마산(해발 489m) 둘레로 난 총 길이 17.74㎞의 길이다. 220~380m의 달마산 중턱에 옛날 암자 12개를 잇는 길이다. 1구간은 출가길(2.71㎞), 2구간은 수행길(4.37㎞), 3구간은 고행길(5.63㎞), 4구간은 땅끝 천년 숲 옛길(5.03㎞)이란 달마고도 길이다.

산 정상부근 도솔암도 임진왜란 때 명량해전에서 패한 왜군이 달마산으로 후퇴하면서 있던 암자와 절들을 불태워 사라진 것을 지난 2002년 법조(法照) 스님이 복원하고 완도, 진도, 고흥, 해남반도가 펼쳐진 산 정상에다 대한민국이 해양강국으로 뻗어 나가기를 발원하는 국운 융성을 위해 종(鐘)불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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