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마을 해남 미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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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와 주변절

땅끝마을 해남 미황사


대흥사

대흥사


두륜산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한 대흥사는
546년 신라 진흥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한 절이다.


대흥사는 한국불교사 전체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도량이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서산대사의 의발(衣鉢)이 전해지면서 조선불교의 중심 도량이 되었다.
풍담 스님으로부터 초의스님에 이르기까지 13대종사가 배출되었으며, 만화스님으로부터 범해스님에 이르기까지 13대강사가 이곳에서 배출되었다. 암울했던 조선 시대의 불교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존재는 한국불교의 오늘을 있게 한 최대 원동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대흥사 경내와 산내 암자에는 중요한 성보문화재가 여렷 있다.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보물 제 48회), 탑산사 동종(보물 제 88호), 북미륵암 삼층석탑(보물 제 301호), 응진전 삼층석탑((보물 제 320호), 천불전(전남유형문화재 제 48호), 천불상(전남유형문화재 제 52호), 서산대사 부도(전남유형문화재 제 57호)등은 대흥사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대변해 주고 있다.

은적사

은적사


해남의 진산인 금강산(481m) 북쪽 산중턱에는 철불로 유명한 은적사가 있다.


절이 자리잡은 곳은 금강산의 북쪽 골짜기 구생동(九生洞) ‘속칭 아홉 살이’로 절의 이름에서 은적골이라 부른다. 이곳에는 본래 다보사(多寶寺)라는 절이 있었고 그 부속 암자로 은적사가 있었으나 19세기 중반 무렵에 다보사가 폐허가 된 뒤 은적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은적사의 본전은 약사전이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자그마한 전각으로 고려초에 봉안된 것으로 보이는 철조비로자나불을 비롯해 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와 지장보살도 제석천룡탱화가 있다. 약사전에 봉안되어 있는 철조비로자나불(도유형문화재 86호)은 몸체 아래와 무릎부분이 파손되어 있는 상태다. 조성연대는 비로자나불이라는 존명과 재료가 철이라는 점에서 통일신라 후기로 추정하고 있다.

백련사

백련사


만덕산에 있는 백련사는 유서깊은 명찰이다.


백련사의 본래 이름은 만덕산 백련사이며 조선후기에 만덕사로 불리우다가 현재는 백련사로 있으며 신라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고려 후기에 8국사를 배출하였고 조선 후기에는 8대사가 머물렀던 도량이며 고려 19년(1232년) 원묘국사 3세가 이곳에서 보현도량을 개설하고 백련결사를 일으킨 유서깊은 명찰이다.
대웅전은 조선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정면 3칸, 측면3칸의 팔작집으로 겹처마인 다포식이다. 내부에는 목조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조선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삼존불은 중앙 본존불이 석가여래이기 때문에 당연히 좌우의 불상은 보살상이 배치되어야 하는데도 여래상을 안치한 점이 특이하다.

서동사

서동사



서동사는 화원면 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2km쯤 떨어진
금평리 사동(寺洞)마을의 운거산(雲居山)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서동사의 창건과 관련하여 절에서는 887년 무렵 신라 진성왕때 최치원이 창건했다고 하나 이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19세기 후기에 들어와서는 <서동사중수서>를 통해 1870년(고종7)당시 대웅전의 대대적인 보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근래에 들어와서는 1924년, 1945년과 1946년에 청학스님이 대웅전을 중수했다. 현재 서동사에는 대웅전, 종각, 요사 건물이 있다. 전체적으로 약간 경사진 지형을 구분지어 두 번째 단에 대웅전과 요사를 배치했다.
구전에 의하면 임진왜란때 피난민이 서동사에 대피해와 이곳의 울창한 칡넝쿨이 사람들을 보호해 주었다고 하며 이때문인지 서동사에 이곳엔 지름 50센티미터 가량의 칡나무로 만든 칡북이 전해온다.

무위사

무위사


월출산에 있는 무위사는 대흥사의 말사이다.


무위사는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 진평왕 39년(서기 617)원효대사에 의해 당초 관음사로 창건되었다고 하나 명확한 근거는 없다. 다만 신라시대부터 무위갑사란 이름으로 불려 왔던 사실은 경내에 현존하고 있는 선각대사편광탑비명에 의해 알려지고 있다.
무위사에 현존하는 대부분의 건물은 네 번째 중건인 서기1555년에 건립된 것이나 극락전만은 최근(1956년경)에 실시된 보수공사에서 본존 후벽의 벽화 명문에 ‘십이 병신삼월초길 화성’이란 기록이 판독됨으로써 성화 12년(서기 1476년)보다 앞서는 건물일 것으로 막연하게 추정해왔다.
그러나 1983년 옥개부 이상을 해체 보수할 때 중앙간 종도리 장혀에서 ‘선덕오년’이란 묵서명이 발견됨으로써 이 건물이 세종 12년(1430)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건물 내부에는 전혀 기둥이 없는 널찍한 공간을 이뤘고 내부 벽에는 여러 보살 및 천인상을 그린 벽화가 있는데 일설에 의하면 당대 인물화가인 오도자의 신필이라고 전해 오고 있다.

도갑사

도갑사


도갑사는 월출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로 월출산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절이다.


신라말에 도선국사가 지었다고 하며 고려 후기에 크게 번성했다고 전한다.
원래 이곳은 문수사라는 절이 있던 터로 도선국사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인데, 도선이 자라 중국을 다녀온 뒤 이 문수사터에 도갑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 뒤, 수미·신미 두 스님이 조선 성종 4년(1473)에 다시 지었고, 한국전쟁 때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타 버린 것을 새로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로 오르는 길은 아름드리 벚나무가 가득하여 봄철 벚꽃이 필 때면 월출산과 어우려져 매우 아름답다. 도선과 수미를 추모하기 위해 1653년에 세운 도선수미비가 있다. 도갑사는 맑은 기운으로 가득한 곳으로 유명하다. 고려 조선시대 3갑사로 유명하였지만 계속된 화재로 아담하고 고즈넉한 외관만이 남아있다. 지금은 조용히 거닐고 싶은 한적한 경내를 대표하고 있다.

주소 : 전남 해남군 송지면 미황사길 164 (59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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